“철새 둘러싸인 공항? 이게 말이 돼?”...그들은 왜 바닷가를 떠나지 못했나

[철새와 공항, 불편한 공존] ② 제2공항 예정지 탐조 이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1차 원인이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일명 '조류 충돌'로 지목되면서 전 국민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겼다. 그저 여러 핑계거리 중 하나로 여겨졌던 '조류 충돌'이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위협이 된 순간이었다. 제주 제2공항 현안에 있어서도 조류 충돌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다. 그리고, 성산읍 현지에서는 일찍이 조류 충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꾸준했다. [제주의소리]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제2공항 부지 인근의 조류 생태와 이에 따른 위협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 6년째 탐조활동 신산리 주민 강석호씨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

"공항 주변으로 온통 철새떼야.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대책이 없는 공항이 어디 있겠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어주질 않으니 방법이 없잖아요. 뭐라도 해서 직접 보여주는 수 밖에."

비단 제주 제2공항 사업에 의해 삶의 터전을 뺏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2공항 사업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정상적이지 않았다는게 그의 표현이다.

참혹한 사고가 발생한 최근 들어서야 관심을 끌기 시작했지만 '조류 충돌' 문제는 줄곧 제기해 온 문제였다. 국토교통부, 환경부, 감사원을 대상으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바뀌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햇수로만 벌써 6년째.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주민 강석호(80) 할아버지는 쉼 없이 성산 바다를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여기 봐봐요. 이 위쪽 하도리부터 아랫쪽 신천리까지 온통 철새들이에요. 문제는 여기가 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지점이라는거야. 전세계 어디에 철새도래지로 둘러싸이고, 철새떼를 관통하는 공항이 있냐는 거에요."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주민 강석호씨가 그동안 모은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성산읍 앞바다의 새떼. 사진=강석호씨 ⓒ제주의소리

손가락으로 지도의 포인트를 직접 짚어가며 쏟아낸 그의 주장은 막힘이 없었다. 제주 제2공항 부지 계획과 활주로 방향, 이에 따른 조류의 분포까지 머릿 속에 깊게 각인된 터였다.

80년간 살아온 고향땅이었기에 주변 사정은 훤했다. 어디에 동굴이 남아있고, 어디에 새떼가 날아들고, 어디에 안개가 자욱한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설명할 길은 없었다. 직접 몸을 일으킨 이유다.

2019년 겨울부터 새벽녘 눈을 뜨면 앞바다로 나가 새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일일이 인화하느라 비용부담도 컸고 호된 발품을 팔아야 했지만, 곁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사진을 데이터화하는 방법을 체득했다.

그의 노트북과 외장 하드디스크에는 지난 6년간의 여정이 정갈하게 정리돼 있다.

"국토부 조사가 너무 엉터리로 진행되니까 환경부에도 문제를 제기했지. 그래도 바뀌는게 없으니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어요. 그런데 또 받아들여지질 않아. 감사원장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답변을 달라고 호소문을 냈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요."

강 할아버지의 기나긴 싸움은 해를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겠어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 있고, 전문적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 있는거지.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덮고 넘어갈 수 있겠어. 더 알려야지. 필요하면 싸워야지."

서귀포시 성산읍 앞바다의 새떼. 사진=강석호씨 ⓒ제주의소리

◇ 새들의 대변자 '새의 친구' 김예원씨..."제주는 새들에게도 국제공항"

그저 새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누군가는 치기 어린 감정으로 여겼을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를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마침 고향땅은 사시사철 다양한 새들이 날아들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바다로, 들로, 오름으로 향했다.

제주섬 동쪽의 새들과 '생이 친구' 김예원(25)씨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바뀐 것은 불현듯 들이닥친 제2공항 조성 계획이었다.

예원씨가 새를 찾아다니고 사진에 담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10살 무렵부터였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생이 친구'라는 동아리를 직접 만들어 생태보호활동에 앞장서 왔다. '생이'란 제주어로 새를 뜻한다. 자연스럽게 자연보호 활동에 눈을 떴고, 대학 전공 역시 환경공학을 택했다.(국내 대학에는 조류학과가 없다)

쌓인 시간만큼 새와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예리하고 세심한 시선을 지녔다. 겨우 눈으로 쫓을 거리의 새의 나는 태만 보고도, 울음소리만 듣고도 어떤 종인지 유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성산에 매가 살고 있는 걸 아시나요? 보통 절벽이 있는 곳에 매가 살거든요. 일출봉 뒷면에도 매가 번식활동을 하고 있어요. 문제는 맹금류는 다른 조류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고, 맹금류가 날기 시작하면 아래에 있던 오리 개체들도 덩달아 놀라서 떼지어 날아오른다는 거예요."

제주시 구좌읍 하도철새도래지에서 탐조활동을 하는 김예원씨. ⓒ제주의소리

제주시 구좌읍 하도철새도래지에서 탐조활동을 하는 김예원씨. ⓒ제주의소리

무안국제공항에서의 불의의 사고가 마치 새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점도 예원씨는 마음 아파했다. 새는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라는게 그녀의 주장이다.

"겨울이면 새들은 제주로 날아올 수 밖에 없어요. 육지는 강이 얼어버리니까요. 새들은 먹이가 있는 곳이라면 위험해도 찾아올거에요. 그 위협이 추위가 됐든, 공항이 됐든지간에요."

제주 철새도래지의 새들은 북쪽 시베리아에서부터 남쪽 호주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를 아우른다. 예원씨는 제주를 '새들의 국제공항'이라 칭했다. 여름엔 여름편, 겨울엔 겨울편에 탑승한 새들이 제주에 머물거나 제주를 경유한다.

"새들의 편에서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새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이곳은 이미 지켜야할 것들이 있고, 살아가는 것들이 있어요. 공항으로 인해 얼마나 큰 변화가 찾아올지 아직 알 수 없겠지만, 새가 좋아서 카메라와 쌍안경을 잡은 어린 친구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어요."

◇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 김민주씨 "양파같은 제2공항, 철저히 검증돼야"

"과정이나 내용이 납득된다면 어떻게 무조건 막기만 할 수 있겠어요. 그건 흔히들 말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겠죠. 그런데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을 때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그 지점들이 납득이 가질 않는거에요. 지금 문제가 되는 것도 과연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는지의 문제잖아요.

어릴적 뛰놀았던 신산 바다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막상 나의 일이 되고보니 너무 간절했고 그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는게 서러웠다. 연대가 필요한 사회 이슈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김민주(32)씨는 흩어져있는 제2공항 반대 목소리를 한데 모아 책으로 엮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김광종·김민주·김예원 공저)'가 탄생한 배경이다.

'멈춰야 한다, 이 섬이 살려면'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제2공항 건설에 맞선 피해지역 주민들과 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부에서는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제2공항 사업의 문제와 이에 맞선 주민들의 투쟁기를 다뤘고, 2부는 300여종에 이르는 성산의 새들이 사진과 함께 빼곡히 담겼다.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 집필 과정을 설명하는 김민주씨. ⓒ제주의소리

김광종·김민주·김예원 공저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 ⓒ제주의소리

"제2공항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면 양파처럼 알면 알수록 심각한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모르면 몰랐지 알고나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드러난 문제를 덮고 넘어가려는 것을 보면 주민들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았고, '우릴 무시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미 쌓인 자료도 너무나 중요한 내용들이었다. 이 자료들이 소실될 것이 무서웠기에 '일단 모으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궂은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탐조활동을 벌인 이들이 주변에 있었기에 그 과정이 고되지만은 않았다. 민주씨는 '그들에게 빚을 진 기분이었다'고 긴 작업 시기를 회고했다.

"문제 제기를 하면 '전문가가 알아서 하니까 조용히 있어라'라는 식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비전문가라해도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맹꽁이는 장마철에 우는데 동면시기에 조사해서 없다고 발표하고. 철새 개체수를 눈에 보이는 것보다 적게 산정하고. 서류 상에는 사라지는, 그런 거요."

"제2공항 뿐만 아니라 환경부가 맡고 있는 전반적인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선 반복될 문제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경부가 최초에 전략환경영향평가 제도 취지에 맞게 감시하고 승인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요. 제2공항을 막는다한들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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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항 조사에도 위험조류 빠졌다”...정부 연구기관도 고개 저은 제2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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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있는 곳에 사람도 있다" 팔순의 철새 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