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천국’ 제주 성산 앞바다...전문가 보고서엔 없던 새들이 날아다녔다

[철새와 공항, 불편한 공존] ① 제2공항 인근 조류 생태계...해안가 따라 군집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1차 원인이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일명 '조류 충돌'로 지목되면서 전 국민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겼다. 그저 여러 핑계거리 중 하나로 여겨졌던 '조류 충돌'이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위협이 된 순간이었다. 제주 제2공항 현안에 있어서도 조류 충돌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다. 그리고, 성산읍 현지에서는 일찍이 조류 충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꾸준했다. [제주의소리]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제2공항 부지 인근의 조류 생태와 이에 따른 위협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앞바다를 날아오르고 잇는 새떼. ⓒ제주의소리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앞바다에 무리지은 새떼. ⓒ제주의소리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늦겨울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앞바다. 

성산하수종말처리장과 맞닿은 바닷가엔 가까이로는 3~4m 눈 앞부터 수십 수백미터 바깥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새들이 빼곡하게 내려앉았다.

대략 500여마리쯤 됐을까. 굳이 셈하기를 포기했다. 사진기 프레임 너머 눈에 보이는 개체수만 천여마리를 훌쩍 넘어섰고, 보 건너와 갈대숲 사이에는 더 많은 새들이 있으리라 유추할 뿐이었다.

성산 일대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대를 형성하고 있다.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가 한데 모여드는 이 곳은 곧 새들의 천국이다. 대규모 철새도래지가 형성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무엇에 놀랐던 것일까. 한산한 아침을 즐기던 새떼들이 갑자기 '푸드드득'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름 모를 새의 군무를 멍하니 바라보고있자니 자연이 지닌 경이로움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날아오른 새떼가 상공의 점으로 변할때 쯤, 불현듯 이 상공에 비행기가 날아다닐 것이란 생각에 미쳤고, 순간 다른 의미의 놀라움으로 변했다. 먼 나라의 사건이라고만 받아들여진 조류 충돌의 위험성은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던 탓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앞바다에서 탐조활동을 하고 있는 주민들.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내 습지에 서식중인 새들. ⓒ제주의소리

두어 시간 남짓의 탐조 시간 중에도 새들의 이동 패턴은 종잡을 수 없었다. 워낙 다양한 개체가 모여있다보니 이동경로도, 고도도 갖가지였다.

"얼마 전에는 대수산봉으로 200~300마리의 까치떼가 한번에 이동하는 모습을 봤어요. 까치가 수백마리씩 떼지어 이동하는 종이 아니거든요. 전략환경영향평가 자료만으론 설명이 안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성산읍 주민 김현지씨는 햇수로 3년째 성산 바다에서 탐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제주도내 주요 환경단체와 성산 주민들은 각자의 팀을 꾸려 탐조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종을 찾는 것도, 개체수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인 연속성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 새가 꾸준히 제주를 찾아오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지, 이동경로는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조사 활동이 필요했다.

4~5개팀으로 나뉘어져 위로는 하도 철새도래지부터 종달, 성산, 오조, 신양, 온평, 신산, 신풍에 이르기까지 제주섬 동쪽 바다가 모두 주요 탐조 지점이었다. 

매주 진행되는 탐조모임의 참여자는 4명에서 많게는 20명에 이른다. 다들 생업에 쫓기며 참여하는 활동이다. 새로운 현상이 발견되면 육지부에 조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곤 한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앞바다의 갈매기떼. ⓒ제주의소리

성산읍 오조리 앞바다에 무리 지은 새떼. ⓒ제주의소리

이들의 손에는 성인 팔뚝만한 크기의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고배율 쌍안경과 소리를 흡인하기 위한 장비도 갖췄다.

실제 보도용으로 구비된 기자의 어설픈 촬영장비로는 순간적인 새의 움직임을 포착해내지 못했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촬영장비를 자비로 사들인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도요 소리가 들리네요."

시간이 쌓이면서 울음소리만 듣고도 종을 유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의 출처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현지씨는 입으로는 도요의 특징을 줄줄 외웠다. 4월께 제주를 찾는 도요·물떼새류는 모래사구가 있는 신양리쯤에서 자주 발견된다는 설명이었다. 

탐사 중에는 왜가리, 쇠가마우지, 고니, 도요, 청둥오리 등 문서상으로만 보던 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새의 빛깔이며 크기며 각양각색이었다.

특히 흑두루미는 전세계 개체수의 절반이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는 종으로 알려졌지만,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종이다. 평가 이후에 날아온 것인지, 평가가 부실하게 진행됐던 것인지는 의견이 갈린다.

성산읍 오조리 현장 탐조 당시 거리상 카메라에 담지 못했던 흑두루미. 같은 장소에서 2023년 2월 찍힌 모습이다. 사진제공=김현지씨 ⓒ제주의소리

환경영향평가를 단순히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내버려두기엔 석연치 않은 지점이 너무나 많았다. 비전문가의 눈으로도 확연히 구분되는 현상도 보고서에는 다뤄지지 않았다. 

"새는 인간보다 이 땅에 훨씬 오랫동안 존재했어요. 인간보다 시각도, 청각도, 지구력도 뛰어나죠. 인간의 관점에서 1~2년 조사하는게 이들을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엿새 뒤 동행한 탐조활동은 장소를 달리했다. 동쪽 해안가를 따라 내려오며 새들의 자취를 쫓았다. 특히 양식장과 인접한 해안가에는 새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양식장의 배출수에는 물고기 사체와 비료 등의 영양분이 섞여있다. 배출구를 중심으로 작은 치어가 모여들고, 이 치어를 먹이로 하는 덩치 큰 물고기가 모여든다.

물고기가 모여든 곳은 곧 새들에 있어 황금어장이다. 각종 새들이 양식장 배출구에 모여드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문제는 전략환경영향평가 상의 조류유인시설에 양식장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경우 양식장은 물론 횟집과 같은 식당도 조류유인시설로 분류하고 있다.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도민회의 환경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 반경 8km 이내의 양식장은 78개에 이른다. 13km로 반경을 늘리면 100여개를 넘어간다.

반경 13km는 비행기가 600m 고도 이내에서 날아다니는 범위다. 대부분의 조류 충돌이 600m 이하 고도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귀포시 성산읍 앞바다의 새떼.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성산읍 앞바다의 새 ⓒ제주의소리

해안선을 타고가다보니 또 다른 무리의 새떼를 발견했다. 양식장의 존재를 찾던 중 길 건너에 한치를 건조해 판매하는 작은 점포가 눈에 띄었고, 새가 몰려든 지점은 한치의 내장을 떼어다 던져놓는 곳이었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성산 해안가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작은 생태계가 구성돼 있는 것이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제주 동부지역에는 염지하수가 있어 제주도 양식장의 70%가 모여있다"며 "국토부의 저감 대책은 배출수를 필터로 막으면 된다는 식인데, 입증된 방법이 아닐뿐더러 배출수의 냄새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홍 대표는 "전국적으로 양식장 인근 해안가에 공항을 두는 경우가 없다. 1kg 정도의 새가 시속 370km의 비행기와 부딪히면 10톤의 충격이 온다. 작은 새라도 떼지어다니면 위험성은 더욱 높아진다"며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해소되지 못한 문제가 환경영향평가로 넘어왔다고 해소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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