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자신들의 숨구멍을 틀어막은 걸 섬사람들은 알겠지

[우리는 우리의 노래를 부른다] 5. 오광석 시인

지난 2019년 ‘제주작가’ 가을호(66호)의 특집 제목은 ‘제주, 환상을 겨누다’였다. 제주도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 제2공항이라는 거대한 파괴 시나리오가 다가오자 제주작가회의 회원들은 사라질지도 모를 오름을 오르고, 벽시(壁詩)를 내걸었다. 그리고 제2공항을 반대하는 시를 모아 특집으로 삼았다. 시간이 흘러 결국 제2공항 기본계획이 고시됐다. 정부는 기어코 제2공항을 건설할 계획이다. 제주도가 파괴되고, 섬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건설로 인한 경제적 이득만 노리고 있다, 산과 바다, 오름과 곶자왈 등 여기저기서 그치지 않는 기계음을 들어보라. 자연이 먼저 이 섬에 터를 잡았거늘 사람이 이 섬을 파괴하고 있다. 여러 개발로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목격했다. 우리는 방관자가 될 수 없다. 강정해군기지에 이어 제2공항의 갈등이 제주를 평화의섬이 아니라 갈등의 섬으로 만들고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것은 이 섬에 살고 있는 우리 작가의 소임이다. 우리는 시를 릴레이로 연재하면서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자 한다. / 제주작가회의

단 10~20분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과거 수백 년의 시간과 미래에 사라질 무수한 시간들을 없애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 사진=copilot

다시 4월 비자림로
오광석

붉은해오라기들이 날아다니던 하늘에 
비행기를 날리려 숲을 지운다 
애기뿔쇠똥구리가 거닐던 숲의 그늘은 
자동차를 달리게 하려 
아스콘으로 덮어 점점 뜨거워진다 
깊게 뿌리박은 삼나무들이 
밑동부터 잘려 쓰러질 때마다 
숲에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터전을 잃어가는 건 
붉은해오라기와 애기뿔쇠똥구리뿐이라고 
죽어가는 건 
삼나무뿐이라고 말하지만 
새로운 4월이 시작되는 걸 
점령군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숲은 
발자국들만 낙인처럼 찍힌 채 
황폐하게 남겨지겠지 
아스콘과 콘크리트의 평원 너머로 
살아남은 삼나무들이 
섬의 바람에도 소리내지 못하고 
숨죽여 울겠지 
그제야 자신들의 숨구멍을 틀어막은 걸 
섬사람들은 알겠지 
섬은 
잊어가는 4월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떨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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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 환경영향평가, 제주도 개입 필요...주민참여 보장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