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다 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노래를 부른다] 3. 오영호 시인
지난 2019년 ‘제주작가’ 가을호(66호)의 특집 제목은 ‘제주, 환상을 겨누다’였다. 제주도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 제2공항이라는 거대한 파괴 시나리오가 다가오자 제주작가회의 회원들은 사라질지도 모를 오름을 오르고, 벽시(壁詩)를 내걸었다. 그리고 제2공항을 반대하는 시를 모아 특집으로 삼았다. 시간이 흘러 결국 제2공항 기본계획이 고시됐다. 정부는 기어코 제2공항을 건설할 계획이다. 제주도가 파괴되고, 섬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건설로 인한 경제적 이득만 노리고 있다, 산과 바다, 오름과 곶자왈 등 여기저기서 그치지 않는 기계음을 들어보라. 자연이 먼저 이 섬에 터를 잡았거늘 사람이 이 섬을 파괴하고 있다. 여러 개발로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목격했다. 우리는 방관자가 될 수 없다. 강정해군기지에 이어 제2공항의 갈등이 제주를 평화의섬이 아니라 갈등의 섬으로 만들고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것은 이 섬에 살고 있는 우리 작가의 소임이다. 우리는 시를 릴레이로 연재하면서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자 한다. / 제주작가회의
성산의 발전은 곧 제주의 발전이며 나아가 국가의 발전이다. 국책사업이니 절대로 막아서는 안 된다며 무엇보다도 보상금을 잘 받는 게 중요하다고 어깨에 힘을 주고 동으로 번쩍 서로 번쩍 온종일 날아다니며 돈이면 다 되는 것처럼 내 속을 긁고 있다. / 사진=copilot
아들에게 보낸 편지
오영호
1
서울의 인왕산엔 무슨 바람 불고 있니?
여기는 벌써 몇 년째 흙바람이 불고 있다. 팽팽한 여론 줄다리기에 몸과 맘이 진창이지만 욱의 삼촌만 보면 힘이 솟는다. 90인데도 날마다 ‘제2공항 결사반대’ 머리띠 두르고, 때때로 물려받은 황무지를 평생 손과 발이 다 닳도록 가꾼 귤밭을 절대 내놓을 수 없다며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고 지팡이 들고 앞장선다.
5월의
감귤꽃 향기
한 광주리 보낸다.
2
이젠 말도 안 하는 칠촌 길의 삼촌은
성산의 발전은 곧 제주의 발전이며 나아가 국가의 발전이다. 국책사업이니 절대로 막아서는 안 된다며 무엇보다도 보상금을 잘 받는 게 중요하다고 어깨에 힘을 주고 동으로 번쩍 서로 번쩍 온종일 날아다니며
돈이면
다 되는 것처럼
내 속을 긁고 있다.
3
잠잠하던 마을마다 다시 줄다리기다.
여름방학 때면 독자봉 통오름 모구리오름 나시리오름 유건에오름 큰물뫼오름 낭끼오름 왕뫼오름 뒤굽은이오름 은다리오름을 올랐었지. 오름 정상에 서서 일출봉과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소섬 그 너머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너는 꿈을 키웠지. 그러나 지금
고향은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두렵구나.
시작노트
제주가 현대사의 역사적 광풍 속에서 철저히 붕괴되고 해체된 것을 상기해볼 때 개발 자본주의의 광풍으로 또다시 흡사 그러지 않으리란 법도 없음을 심각히 고려해보면, 이 작품의 시적 고발은 제주 공동체가 어떤 삶의 현재와 미래를 궁리할지에 대한 ‘깨어 있음’의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최선의 실천을 강구할 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명철)